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 국군/문제점 (문단 편집) == 구 [[일본군]]식 [[권위주의]]의 잔재 == 한국군은 일본군, 미군, 그리고 권위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한국군 수뇌부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무조건적으로 일본군 영향을 부정하며 오로지 미군의 영향만 인정한다. '[[상명하복]], 가혹행위, 구타' 등은 일본군에서 흔히 강조하던 정신력이나 태도에 해당하는 개념이며 이는 [[군국주의]]를 물려받은 군부독재정권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국군은 구 일본군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군의 유산을 이어받은 악습이 있다는 것조차도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독일군, 미군, 이스라엘군의 [[임무형 지휘체계]]를 본받겠다며 큰소리 치지만 내심 좋아하는 것은 일본군의 [[상명하복]], [[옥쇄]], 그리고 [[간도특설대]]의 [[경례구호]]이다.[*반론 상명하복을 일본군이 강조했다고 해도 상급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모든 군대의 원칙이며 가혹행위 구타도 어느 나라나 있었으므로 무조건적으로 일제의 잔재로만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본군의 영향도 있겠지만 권위주의 정부로 인해 경직이 더 클 것이다. 경례구호도 동아시아권 문화로서 비슷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옥쇄와 인명경시형 작전만은 구일본군의 영향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자위대]]와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해병대]]의 악습의 원인은 이들 군대가 장교와 병력을 비롯해 인적으로 [[일본군]]의 유산을 일정 부분 이어받은 군대이기 때문이다. 광복군이나 독립군 출신이라 해도 일본식 군사교육을 받다 탈주한 사람들([[김경천]], [[지청천]] 등)도 있었고, [[박정희]]조차도 만주에 있었던 군관학교에 다녀 일본군 장교를 지냈다.[* 이로 인해 그는 여전히 친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애초에 육군에는 [[일본군]] 출신들을 마구잡이로 받아줬다.[* 대표적으로 육군의 대표적인 장성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은 무려 초대부터 10대까지 일제 장교 출신이다". 다만 이 부분도 조금 논란이 될 수 있는데, [[이종찬]]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종찬은 일본군 출신이었음에도 광복군과 같은 독립군 출신 군인들을 기용하는데 적극적이었고 참군인의 모습을 보였고 김석원, 백선엽 같은 고평가를 받는 군인들도 일본군 출신이라는 점에서 일본군이라고 무조건 까는건 옳지않다.] 당시 일본 육사는 동아시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군사교육기관이었던 탓도 있다.[* 일본 육사를 제외하면 중화민국의 황포군관학교 정도가 이름을 알아주는 군사교육기관이었는데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사정상 황포군관학교를 들어가긴 어려웠다.] 심지어 [[https://www.google.co.kr/amp/1boon.kakao.com/fnnews/56a1f075a2b88153fcb7ee8c/amp|육군 지휘관 휘장]]도 구 일본제국 장교 휘장과 비슷한 지경이다.[* 한국 광복군 휘장이 일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고 현재 한국군에 이것이 고착된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또 해군에서는 초창기 해군 장교와 부사관들 중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출신이었던 자들을 죄다 새로 창설된 해병대로 몰아넣어버리는 바람에, 해병대는 일본군 출신들 투성이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군/만주군 출신들로 구성된 윗물로부터 당연히 구타, 가혹행위 같은 일본군의 잔재가 나올 수 밖에 없었고,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군 창설 초기 지휘관을 맡을 광복군 독립군이 일본군 출신에 비해 매우 부족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물론 이건 광복 후 구 일본군 장교들이 다수 합류한 해병대와 육군에만 크게 해당하는 사항으로, 해군이나 공군에 일본군이 끼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다. [[대한민국 해군|해군]]의 경우, 초대 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부터 일본군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에도 관여했다. 또 일본군 출신들을 해병대로 모두 몰아넣어버린 결과 해군엔 일본군 출신 비율이 적어지게 되었다. [[대한민국 공군|공군]]의 경우 공군 창설 7인이 일본군 출신([[김정렬(1917)|김정렬]], [[김영환(군인)|김영환]], [[이근석]], [[박범집]])[* 단, 김영환의 경우 자의가 아니라 징집된 케이스라 친일반민족행위자 사전에서도 이름이 실려있지 않다.], 광복군 출신 (최용덕), 중국군[* 당연히 중공군이 아니라 중화민국군이다.] 출신(이영무), 민간 출신(장덕창)으로 다양한 편이고 초대 참모총장인 김정렬은 일본군 출신이지만[* 일본제국 육군 장교 출신으로 [[히엔]]을 조종했었다. 이런 이유로 독립운동가와 [[한국광복군]] 경력으로 인해 공군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최용덕]] 장군과는 달리 김 장군은 현역 공군 장병 및 공군 예비역 사이에서도 평가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 그래도 창군기 인물이므로 평가가 특출나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공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2대 참모총장 최용덕 장군은 중화민국 공군 및 광복군 출신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미 공군의 영향을 비교적 강하게 받았다.~~어쩐지 공군이랑 해군은 그나마 제대로 굴러간다더라~~[*과연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을 볼때 이렇게 단언하는 게 맞나 싶다. 다만 병사들 입장에선 적어도 해군 및 공군의 생활여건이 더 좋은건 사실이다.] 일각에선 이미 일제 시기는 70년이 넘었으며, 건군기 장교단은 광복군, 중국군, 일본군, 만주군, 기타 독립군 출신이 혼재된 상황이었으며 [* --낙루--국방장관 [[신성모]]부터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다. 일본군 출신 [[김석원]] 장군이 한국전쟁 발발 후 중국군-광복군 출신인 [[김홍일(군인)|김홍일]] 장군을 찾아가 [[수기사|수도사단]]장으로 복직하고, 반대로 김홍일 장군이 한직으로 좌천된 것을 김석원 장군이 자서전에서 "아연실색했다"고 깐 사례도 있긴 있다. 실제로 이렇게 밀려난 구 일본군/광복군 출신 노장들 대신 육군 장교단의 주류가 된 건 미군 군사고문단의 지도를 거친 젊은 만주군 출신과 신임장교들이었으며 일반 병들은 군대 문턱도 못 밟아본 사람들이 많았다.] 초기 국군에는 분명 일본군/만주군 출신이 존재했고 그들로부터 일정 부분 악폐습의 원인을 찾을 수는 있겠으나,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웠고, 독재세력이 지배하면서 의롭고 똑똑한 사람들은 모두 죽였다"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류의 레토릭과 그 연장에 있는 "한국 군경은 황군의 후예이므로 이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정치적이고 부당한 지적이다. 광복 직후 국내외의 복잡한 상황과 한계, 그 숫자만큼 다양한 인물들, 암흑기에도 노력한 의인들, 새로운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당대 명분을 무시하거나 축소한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군이 구 일본군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뇌부의 모습도 구 일본군과 다를 것이 없다. 대잠전이 불가능한 천안함을 대잠초계에 투입시켜놓고 천안함 폭침사건이라는 대사건을 만들어놓은 군 수뇌부는 반성은 커녕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612028&plink=SHARE&cooper=SBSNEWSMOBEND|승조원들의 안이한 태도 때문에 피격을 당했다]]'''라며 승조원들을 비하하고 천안함 ''생존자'' 2명이 있는 앞에서 교육사령관이라는 사람이 '''천안함 생존자들은 수치스러워해야 한다고''' 모욕까지 하며 생존 장병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도대체 왜 살아 돌아왔냐는 식의 반응을 하며 몰아가는데, 대잠전을 못 하는 함선으로 대잠초계를 하라고 한것은 '''[[대전차총검술]]로 전차를 부수고 오라는 것과 다름없는 헛소리이며''', 일본 해군이 패전 후 살아남은 함장 및 승조원에게 '''왜 죽지 않았느냐? 살아 돌아온 게 창피 하지도 않느냐?'''라고 비하하고 진급을 비롯한 수많은 곳에 불이익을 주면서 사실상 [[비국민]] 취급을 가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일본군의 적통은 한국군이라는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닐 정도로 너무나 닮아있음을 알수 있다. 오죽하면 군필자들 사이에서 '''"잘 알아두세요, 조국은 당신을 버렸어요. 다시 한 번 세겨 들으세요 조국은 당신을 버렸습니다."''' 라는말에 대부분 동감하겠는가? 또한 이런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순간 "빨갱이로 낙인찍히고 국정원 지하실로 초대받거나 빨간 마티즈 타고 남한산성 간다 조심해라." '''라고 비꼬아도 인정이라고 말을 하는가? 다만 모든 관행이 일본군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직각식사]]는 [[미군]]에서 [[사관생도]]들을 처벌하기 위한 가혹행위를 수입한 것이다. 그리고 권위주의적 병폐 등은 [[일본군]] 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선진적이던 유럽 연합국 군대에서도 흔히 일어나던 일들이었다. 당장 [[프랑스군]]과 [[영국군]], [[독일 연방군]]만 하더라도 여전히 각종 병영부조리 관련 뉴스가 터지고 있으며, [[미군]] 또한 [[베트남 전쟁]] 때 각종 병영부조리로 인한 [[프래깅]]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현재 미군의 선진적인 병영 이미지는 1970년대 이후 미국 정부와 군대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수십년동안 공을 들인 결과물이다. 전 세계 군대에서 보편적으로 있었던 병폐이지, 전부 일제의 잔재, 과거정권들의 잔재라고 보는 시선은 그릇되다. 하지만 2017년 8월 17일 [[경향신문]]의 기사에서 공군의 박 모 소령이 부대원들에게 가정 교육이 조선식 가정교육을 받아서 그래. 미국식 가정교육이 아니고. [[조센징]][* 이 단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한국인에 대한 일본식 멸칭인데, 이 단어를 한국군 [[소령]]이 버젓이 사용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들은 다 물에 처박아 수장시켜야 해라고 폭언을 퍼부었다는 사실이 KBS가 보도한 녹취 자료에 의해 밝혀진 것을 보면, 한국군 내에 일본군식 군사 문화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https://news.v.daum.net/v/20170817210427605|출처]] 이러한 억압된 상황속에서는 일반병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데 이게 왜 문제되는지 대다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투상황에서의 문제해결 아이디어나 무기의 개선방향은 일반병사의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어왔다는 것을 보면 '''일반병사의 위축되지 않은 발언권'''은 매우 중요하다. 실례로 2차 대전기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보카주지형을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병장'''이 건의한 것이고 이를 채택한 것인데 국군전역자들은 '''병장'''의 아이디어를 채택했다는 것을 들으면 열이면 열이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억압된 국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세계 대부분의 병장계급은 부사관이다.한국군이 유달리 병장을 병으로 두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